집에서 늘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엄마는 내가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달려와서 화를 냈다. "고무장갑 끼라고 몇 번을 말해!!" 아니, 이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어쩌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베란다에 있던 엄마는 달려와서 반드시 화를 냈다.
"고무장갑 끼라고 했지!!!" 내가 주섬주섬 고무장갑을 끼는 걸 확인하고야 엄마는 베란다로 돌아가 고무장갑을 다시 끼고 일을 했다. 엄마는 집에서 늘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주방에 있을 때도, 베란다에 있을 때도 엄마는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설거지를 할 때도, 청소를 할 때도, 세탁기를 돌릴 때도 엄마는 고무장갑을 꼈다.
집에서 내가 혼자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해 놓으면, 밤에 귀가한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설거지, 고무장갑 끼고 한 거야?" 내가 그렇다고 하면 엄마는 "그래"하면서도 의심쩍은 얼굴로 내 손을 훑었다.
스무 살 때부터 쉬지 않고 알바를 했다. 이삭토스트에서 풀타임으로 1년 반을 일했다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경력인데, 파리바게뜨와 설빙에서도 1년이 넘도록 지금껏 일하고 있다. 한편 그전에 있던 알바생은 우리 카페에서 한 알바가 첫 알바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두 알바생을 보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알바 경험의 차이는 일에 대한 자세의 차이였다. 우리 카페에서의 알바가 첫 알바였던 알바생은 맨손으로 설거지를 했다. 그러니 차가운 물에는 "앗 차가워!" 했고, 뜨거운 물에는 "앗 뜨거워!"라고 했다.
청소를 할 때도 맨손으로 빗자루를 잡고 걸레를 잡았다. 정확히 말하면, 손 끝으로 살짝 잡았다. 바깥에 떨어진 쓰레기를 손으로 주울 때는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가락 두 개로 떨어질 듯 말 듯하게 집어 올렸다.
알바 경험이 풍부한 알바생은 모든 일에 앞서 일단 고무장갑을 낀다. 고무장갑을 낀 이 알바생은 거침이 없다. 얼음물에도 손을 풍덩 담그고,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에도 손을 풍덩 담근다. 아무리 더러운 그릇도 덥석덥석 잡아 씻는다. 세제를 풀어 벅벅 행주를 빨고 걸레를 빤다.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바깥에 나가 양손에 한가득 쓰레기를 줍는다.
이 알바생을 보면서, 나는 엄마가 왜 그토록 고무장갑에 집착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손이 거칠어지는 것도 걱정했겠지만,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일하지 않는 나의 자세에 대해 화를 냈던 것이다.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쟁취해야 하고, 서바이벌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적이 없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성실히 하다 보면 다음 단계가 열렸고, 그다음 단계로 슬슬 돌입해서 또 성실하게 해 나가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건 꼭 해야 돼!" 하고 달려들었던 적이 없었다.
'되면 좋지. 아님 말고.'의 마인드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시험에서 떨어져도 별로 큰 타격이 없었다. '내 길이 아니었나 보지. 어쩔 수 없지.' 하면 끝이었다.
아빠는 이런 나를 좋아했다. 아주 훌륭하다고 했다. "모든 젊은이들이 너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런데 그게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아빠가 알게 된 건 내가 스물일곱 살이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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