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하게 쪽박찰까 제대로 대박낼까
- '함돈' 장민기 대표 -
턱수염만 있다면 장비를 닮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젊은 날의 루치아노 파바로티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건장한 체구에 낮고 굵직한 음성, 순박하고 친근한 미소를 띤 장민기(39) 대표는 첫눈에도 사람 좋은 인상이다.
대학시절 합창단에 들어가 베이스로 활동했는데 당시 알토였던 권오령(39) 동기는 너무 예뻤다. 베이스와 알토는 독일서 개최된 세계 합창대회에도 나란히 참가했고, 함께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했다.
그리고 지금은 <함돈>과 <참나무 누룽닭>를 함께 경영하며 집과 일터에서 화음을 맞추고 있다.
💣 무모한 창업의 대가
2학년을 마치고 군대생활을 대신해 판금 회사에서 2년7개월간 산업체 근무를 했던 것만 빼면 장민기 학생도 여느 대학생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대학 시절을 보냈다.
소방 공무원인 부친 슬하에서 누나와 형을 둔 막내로 자라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으나 대학 문을 나서면서 독립과 진로를 고민해야 했다. 애초부터 월급쟁이 생활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미 정혼자가 있는 상태여서 무직 상태로 사회에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비교적 조직의 통제가 느슨한 기술영업이나 창업 쪽으로 진로의 가닥을 잡았다. 기술영업을 하려면 영어 실력을 갖춰야 했다. 영어도 배우고 만일의 창업을 대비해 종잣돈도 벌고자 4학년 때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양 도축장에서 1년간 일했지만 영어실력도 통장의 숫자도 크게 늘어나진 않았다.
대학 졸업 후 반 년 정도 부동산 컨설턴트 생활을 했는데 그 일이 두 사람 미래를 위한 굳건한 발판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창업을 결심했다.

2011년 시흥시 정왕동 자신이 다녔던 대학교 앞 건물 2층에 보증금 700만원, 월세 50만원을 주고 40평 규모의 점포를 얻었다.
무모한 창업이었다.
✔︎ 창업 교육? 받은 적 없었다...
✔︎ 음식조리? 해본 일 없었다...
✔︎ 외식업 지식? 배운 바 없었다...
경험도 지식도 없이 일단 시작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드나들었던 식당과 술집들은 전부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였다. 식당과 술집이 망한다는 건 생각해본 적 없었다.
한 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6월에 호프집 <아띠>를 개점했다. 대학생을 타깃으로 한 술집이었다. 문 열면 손님이 줄설 줄 알았는데 막상 개미 새끼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홀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때마침 대학교가 방학에 들어갔던 것. 스물일곱 초보 사장님은 미처 거기까지는 계산에 넣지 못했다. 대학 상권의 특성을 모르고 창업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가게가 텅텅 빈 것만은 아니었다. 창업 소식을 듣고 친구와 선, 후배들이 몰려왔다. 사람 좋은 장 대표는 그들과 어울려 공짜 술(?)을 즐겼다. 모두 기분 좋게 술잔을 비웠지만 예비 신부 장씨만 홀로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학교와 매출은 방학했어도 월세와 직원 월급은 쉼 없이 지급해야 했다. 당장 최소한의 유지관리비가 필요했다.
정신이 번쩍 든 장 대표는 인건비라도 벌려고 다단계에 발을 들였다. 돈을 벌기는커녕 필요도 없는 물품만 집안에 잔뜩 쌓아놓은 채 몇 달 만에 발을 뺐다.
화불단행이라 했던가. 이번에는 미성년자가 출입했다며 관청으로부터 난데없이 영업정지 두 달의 처분을 받았다. 하필 영업정지 기간이 미리 잡아둔 그의 결혼식 날짜와 겹쳤다. 처가 식구들에겐 면목이 없었다. 그럼에도 장모님은 전폭적으로 예비 사위를 신뢰했고 응원의 뜻을 보냈다.
대학에서 캠퍼스 커플로 만난 신랑 신부는 투룸을 얻어 신방을 차렸다. 난방비가 없어서 두 사람은 패딩을 잠옷으로 입고 첫 겨울을 났다.
📉 친화력으로 넘긴 위기 또 하나의 위기가
두 달간의 영업정지는 그에게 성찰의 계기가 됐다.
'그동안 내가 철이 없었구나!' |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혼인하면서 가정에 대한 책임감도 현실의 무게로 다가왔다.
영업정지가 해제되자 열심히 일했다. 손님 입장에서 새 메뉴를 개발했고, 감각적인 이벤트도 준비했으며 점포 안팎을 청결하게 쓸고 닦았다.
고객이 없는 매장에서 문어가 제 발 뜯어먹듯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던 몇 달 전의 모습은 간 곳 없었다. 혼자만 열심히 한 게 아니었다. 직원들과의 의기투합이 큰 힘을 발휘했다.
달라진 사장의 행동에 직원들도 호응했다. 모두 한 배를 탔다는 동지애를 느끼면서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시키지 않아도 직원들은 각자 자기 할 일을 찾아서 했다.
“어려서부터 사람 잘 챙긴다는 소리 많이 들었다. 사람들과의 친화력은 나의 장점이다. 여건이 어려워도 잘 해주려 노력했던 내 진심을 직원들이 알아줬던 것 같다. 그들은 점포를 개선하려는 내 의도를 공유하고 힘을 모아줬다. 지금도 당시 직원들이 고맙다.” |
고생한 보람은 결과로 나타났다. 차츰 고객과 매출이 늘더니 1년 정도 지나면서 경영이 정상화됐다.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하루는 프랜차이즈 박람회에 들렀다가 노르웨이산 생 연어를 보고 마음이 끌렸다.
2014년, 같은 건물 1층 지금의 <참나무 누룽닭> 자리에 전전세로 점포를 얻어 <회사>라는 횟집을 차렸다. 박람회에서 눈여겨봤던 생 연어를 취급했다.
생 연어 외에 각종 생선회도 메뉴로 구성했다. 그런데 횟감 공급가격을 두고 본사와 분쟁이 벌어졌다. 똑같은 횟감인데 본사를 거치면 터무니없이 비싸지는 걸 장 대표는 이해할 수 없었다.
5개월 만에 프랜차이즈 계약관계를 청산하고 독립했다.
어려움은 또 있었다. 횟집은 다른 아이템보다 손님이나 직원과의 접촉면이 넓다. 그만큼 감정노동이 필요했다. 음식의 맛과 질보다 어떤 면에서는 단골고객과의 관계유지가 중요했다.

사람들에 치이는 생활이 반복되자 친화력의 왕인 장 대표조차도 염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객에게 받는 직원들의 스트레스 총량은 최종적으로 모두 사장의 몫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좀 더 편안한 아이템으로 업종전환을 하고 싶었다.
2016년, 같은 건물 1층 <회사> 옆에 있던 <새마을식당> 주인장이 가게를 내놓자 이를 인수했다.
원래 고기를 좋아했던 터라 <아띠>를 매니저에게 넘겨주고 <새마을식당> 운영에 전념했다.
이듬해에는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회사>를 정리하고 닭발집을 열었다. 편안하게 장사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닭발집이었지만 편안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인근에 새로 조성된 신도시 상권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시흥시의 원 도심지에 자리한 닭발집과 <새마을식당>은 점점 상권이 쇠락했다.
특히 닭발은 재구매 빈도수가 낮은 아이템이어서 아무리 단골손님이어도 자주 오지 못했다.
외부적 요인 탓이 컸지만 장 대표는 자신이 편하게 장사하려는 나태함 때문에 사세가 위축됐다고 여겼다.
장사가 안 되자 가장 고통스러웠던 점은 직원들 처우 문제였다. 마음은 잘해주고 싶었는데 현실이 뒷받침되지 못해 답답했다. 때마침 시급을 올려줘야 할 시기이기도 해서 일부 직원과는 가슴 아픈 결별을 해야 했다.
🍗 닭으로 넘어진 자리 닭으로 일어나
한 번 꺾인 상권이 저절로 회복되는 일은 드물다.
이 대목에서 장 대표는 평소 신조와는 정 반대의 역발상을 한다.💡
‘편하게’가 아니라 힘들더라도 ‘제대로’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손님이 스스로 찾아오는 식당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발길 돌린 고객들을 상권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 떼로 만들려면 그만한 매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참나무 장작구이 통닭이었다.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조리 과정이 힘들고 복잡해 외식업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고개를 외로 꼬는 아이템이다.
여러 번의 연구와 시연 끝에 2019년 장작구이 전문점 <참나무 누룽닭>을 출범시켰다. 닭발집에서 통닭집으로의 변신이었다.

국내산 닭에 찹쌀을 넣어 참나무 장작으로 굽고 불에 달군 장수곱돌로 지그시 누르면서 익히는데 이때 닭고기가 ‘치지직’하는 소리, 고소한 냄새, 연기를 풍기며 노르스름하게 익어간다. 닭 속에 든 불린 찹쌀은 누룽지가 된다. 익을 때의 시즐감이 고객의 오감을 자극하면서 식욕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화덕을 나온 누룽지통닭은 테이블 위에서도 한동안 지글거리며 소리, 냄새, 빛깔을 과시한다. 기름을 쏙 뺀 담백한 맛에 참나무 향의 풍미를 입혔다.
일반 치킨이나 통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별화와 희소성은 떠난 손님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누룽지통닭은 남녀노소 누구나 선호하고 별미로도 식사대용으로도 술안주로도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메뉴다.
당초 개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열무쟁반냉면과 찰떡궁합이어서 대부분의 손님이 동시 주문. 테이블 단가를 높여준다. 누룽지통닭과 열무쟁반냉면을 묶은 ‘통냉세트’(3만원)는 간판 메뉴가 됐다. 서비스로 제공하는 닭곰탕은 고객 체감 가성비를 한껏 높여준다.
손님이 와야 할 이유들을 하나 둘 늘리자 코로나19 극성기였음에도 대기 줄이 차츰 길어졌다.
2022년 5월에는 유튜브 채널 ‘푸디랜드’에 업장이 소개되면서 더욱 입지를 굳혔다.
장 대표는 꺼진 불도 다시 봤다. 남들이 외면한 아이템 속에서 고객 니즈 요소를 재발견해내고 구현해냈던 것이다.
흔하고 뻔한 치킨들에 식상했던 고객에게 레트로 감성까지 장착한 가성비 높은 오감만족 통닭의 출현은 가뭄의 단비였다.
요즘에는 힘든 일을 덜어주는 장비들이 나와 예전보다 노동 강도는 물론, 조리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통닭이 중 노년층의 음식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참나무 누룽닭>에 오는 손님 중에는 적지 않은 젊은 커플들이 있다.
누룽지통닭으로 성공을 경험하면서 외식업을 바라보는 장 대표의 의식이 확장됐다.
마침 이 무렵 친형이 보내준 외식업 경영 지침서를 읽고 '우물' 밖에는 훨씬 더 많은 정보와 기회와 네트워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꾸준한 학습과 발품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후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해 이수하고 벤치마킹에 나서곤 했다. 축적된 지식과 역량으로 <새마을식당>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한 새 고깃집을 열기로 했다.
🥩 제대로 만든 돼지고기 <함돈>
아내 권씨와 직원 등 두세 명이 1년 동안 고기값만 2000만원 정도 지불하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를 찾아다녔다.

그 결과 2021년 돼지고기 전문점 <함돈>을 개점했다. 함’자는 빠질 함(陷), 돼지고기 맛에 빠져드는 집이라는 의미다.
제주도산 돼지고기와 국내산 목살로 메뉴를 구성했다. 이번에도 편안함보다 ‘제대로’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열원은 가스가 사용하기 편하지만 숯불방식을 채택했다. 반찬도 구매하지 않고 직접 담그고 삶고 무쳐서 낸다.
이제 <참나무 누룽닭>과 <함돈>은 시흥시는 물론 수도권에서 손님이 일부러 찾아오는 식당이 됐다.
9월에는 지금의 여세를 몰아 배곧신도시에 <함돈> 2호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육향이 진하고 재래종 흑돼지의 유전자가 섞인 개량종인 ‘우리흑돈’ 전문점이 될 것이다.
장 대표는 이런 성과들이 자신의 힘만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라 아내와 직원들의 조력 덕분임을 잘 안다.
한신, 장량, 소하가 없었다면 유방의 한나라는 없었을 것이다.
<함돈>에는 장기근속 직원이 유난히 많다. <아띠>시절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와 11년간 함께 일했던 직원이 지금 <참나무 누룽닭> 점장이다.
<함돈> 2호점 점장 역시 10여 년 간 장 대표와 동고동락해온 직원이다. 8년 이상 근속자도 수두룩하다. 일부 직원은 퇴사했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도 있고 재직 중인 직원 추천으로 입사한 직원도 있다. 오래 손발을 맞추다 보니 장 대표의 개입 없이도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장 대표에게 또 한 사람의 공헌자가 있다. 아내 권씨다.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 사인물 제작, 마케팅, 회계 업무 등을 맡고 있다. 장 대표와 반대로 내성적인 성격이다. 남편이 일거리를 벌이거나 폭주하면 조용히 수습하거나 적당히 브레이크를 걸어줬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 때마다 없어서는 안 될 특급 참모다.
“돈은 없지만 처복과 인복은 넘친다. 아내와 직원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외식업 비즈니스는 고된 일이다. 그러나 내 브랜드가 인정받고 대중에게 먹힐 때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내 가게 앞에 줄을 선 손님들을 볼 때 외식업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내가 해보려는 식당 모델은 프랜차이즈화가 어려운 아이템들이다. 직원들의 참여와 공동투자로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해볼 생각이다.” |
손님 행복이 직원의 행복이 되고 직원 행복이 장 대표의 행복이 되는 행복 선순환 체계를 완성하는 게 그의 꿈이자 최종 경영 목표다.
목표 달성을 위한 장 대표의 행동강령 3장이 있다.
❶ 돈이 벌리는 매장
❷ 고객에게 행복한 시·공간을 제공하는 주인장
❸ 직원을 남부럽지 않게 대우해주는 사장
그 첫 출발은 역시 좋은 음식이다.
시인이 쉽게 써진 시를 부끄러워하듯 이젠 쉽게 만들어진 음식은 손님에게 내놓기 부끄럽다는 게 장민기 권오령 부부의 말이다.
음식도 인생도 ‘편하게’가 아니라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두 사람의 이중창에 “브라보!”를 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