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
식당밥일기
식당경영 개선 및 메뉴 기획 전문가

장사의 종착지는 돈 부자 아닌 사람 부자

2023.10.03

장사의 종착지는

돈 부자 아닌 사람 부자

<마파람> 김영진 대표

장사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서 조선 거상 임상옥의 삶의 지향을 두고 한 말이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거상인 진나라의 여불위와 피렌체의 조반니 디 비치도 이문보다 사람에게 투자해 후세까지 명성을 떨치고 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김영진 대표 역시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지향한다.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뛰어난 사람을 키우는 것, 그래서 인생 대차대조표의 자산 항목이 인재들로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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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 남편과 시작한 해물찜 전문점

형제가 많은 집에서 살았다. 바리공주의 부모와 달리 딸들을 애지중지 키웠던 양친 덕분에 유복한 유소년기를 보냈다. 그렇지만 학업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던 다섯 언니들에게 주눅이 들어 다소 내성적인 소녀로 자랐다. 고향인 경남 거창군의 부모 슬하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도심으로 나와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급식 회사에 들어갔지만 내 길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사를 나와 대학 편입시험을 준비해 무역학과에 편입학했다.

생소한 무역학 수업을 따라가려면 기존 학생들보다 더 공부해야 했다.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가며 뒤늦은 학구열을 불태웠다. 출발은 늦었지만 성적은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자신감도 생겼다. 그때 도서관에서 면학의 열기를 뿜던 또 한 명의 무역학과 학생이 있었다. 지금의 남편인 권재상 대표였다. 그는 늘 성실했고 진중했다. 두 학우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됐고 장래를 약속한 사이로 발전했다.

대학 졸업 후 김 대표는 계약직 공무원으로, 권 대표는 은행에 각각 취직했다. 장래 비전을 고려해 권 대표는 얼마 뒤 은행을 그만두고 외식업체 매니저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권 대표 부친이 남의 가게에서 공들여 일할 바에는 차라리 내 가게를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부산 온천장 골목 안쪽의 식당을 매입했다. 가정용 3층 주택 을 개조한 꼬리곰탕집이었다. 오래된 유흥지역 상권인데 메인 거리에서 떨어진 외진 곳이어서 식당 입지로는 적절치 않았다. 예비 신부였던 김 대표도 공무원 계약 근무 기간 만료 후 식당에 합류했다.

김 대표와 권 대표 부자, 세 사람 모두 외식업은 처음이었다. 꼬리곰탕집을 그대로 이어가려 했으나 조리사의 요구사항이 너무 과도해 포기했다. 결혼 1년을 앞둔 2005년, 해물찜 브랜드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외식업 첫발을 내디뎠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식당 경영은 엇박자의 연속이었다. 건물은 식당 운영을 전제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조리 하기에도 서빙 하기에도 불편했고 작업자 동선은 길고 복잡했다. 직원들은 나이 어리고 식당 경영에 젬병인 김-권 부부를 은근히 무시했다.

몇 년 지나도록 음식 맛이 정체된 프랜차이즈 본사와 재계약을 포기했다. 지금의 <마파람> 간판으로 독립하고 새 출발을 하면서 남편인 권 대표가 본격적으로 주방을 맡았다. 입맛 까다로운 건너편 나이트클럽 직원들이 엄지를 들어 올릴 정도로 <마파람> 해물찜 맛은 이전보다 월등해졌다. 그렇다고 장사가 그만큼 나아진 건 아니었다.

세 식구와 네 명의 직원 등 모두 7명이 일했는데 하루 매출은 고작 50만원 선이었다. 1인당 하루 매출이 10만원도 안 되는 낮은 생산성이 몇 년간 지속됐다. 극적 변화는 없었다. 김 대표는 답답했으나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럴 때면 수영장에 가서 갑갑증을 풀곤 했다. 수영장에서 생각지 못한 귀인을 만났다. 그간 친분을 쌓은 지인이 식당에 다녀간 뒤 주변에 입소문을 내줬다. 덕분에 다소나마 새 고객이 유입됐다. 새 고객들은 가지 치듯 또 다른 고객들을 데리고 왔다. 식당 구원의 손은 식당 외부에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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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울어야 식당이 흥한다

근본적으로 혁신 하려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경대 CEO 과정에 들어갔다. 배움이 늘수록 식당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뜨였다. 가장 큰 문제는 열악한 상권이었다. 또한 공간과 작업 효율성이 너무 낮은 점, 조리 시간이 길어 음식 기다리는 고객 불만이 큰 점 등등이었다.

점포를 이전하지 않는 한 상권을 개선할 방법은 없었다. 그 이외의 나머지 문제들은 개선 여지가 있었다. 당장 추진하고 싶었다. 그러나 식당 안에서만 일했던 시아버지와 남편인 권 대표, 두 사람은 김 대표의 문제의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고급 해물찜의 가치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멜라민 수저를 도기로 바꾸는 일조차 김 대표의 권한 밖이었다. 개선 욕구는 강했으나 ‘넘버3’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식당의 당면 과제는 조리 시간 단축이었다. 마침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부경대 CEO 과정 동료인 안은영 대표를 통해 해결책을 찾았다. 게를 먼저 쪄서 조리하면 시간이 단축됐던 것이다. 앓던 이를 뽑은 김 대표는 너무 고마워 안 대표에게 100만원과 함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안 대표는 그 돈으로 명품 지갑을 사서 김 대표에게 도로 건넸다. 지갑에 돈 가득 채우라며 예쁘게 포장한 지갑을 받는 순간 김 대표는 억만금의 돈보다 더 소중한 무엇을 얻은 것 같아 가슴이뭉클했다. 안 대표의 조언으로 매출에 도움이 안 되고 손품만 많이 드는 7000 원 짜리 정식 등을 없애고 찜과 탕만 남겼다. 메뉴 구조조정을 했더니 걱정했던 매출 하락은 없었고 식재료 구매, 관리, 조리가 간편해졌다.

음식 맛도 고객 니즈에 맞게 고쳤다. 찜 맛의 핵심인 소스의 전분과 당분을 줄여 좀 더 라이트한 맛을 강조했다. 고객 반응이 한결 좋아졌다. 불리한 입지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배달 판매도 병행했다. 또 한 가지 골칫거리는 꼬리곰탕집 시절부터 출입하는 정년 퇴직자 모임 고객들이었다. 이들은 음식을 시켜 놓고 장시간 고스톱을 쳤다. 못마땅해도 참아왔지만 과감하게 이들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살짝 걱정했는데 식당은 아무 타격을 입지 않았다. 목표고객 선정, 즉 타게팅의 주체는 고객이 아닌 주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음식과 서비스의 질이 적정 수준을 유지하려면 직원들의 휴식이 필요했다. 김 대표는 두 사람을 설득해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했다. 약 2년간 권한 범위 내에서 가능했던 개선 작업을 마무리하자 매출액이 하루 200~300만원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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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에서 바다로, 물고기 물을 만나다

김 대표는 2012년에 첫 아이를 출산 하느라 식당을 떠났다. 산후조리를 끝내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더니 힘들여 개선했던 것들이 상당 부분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 있었다. 기껏 올려 놨더니 다시 산 밑으로 굴러떨어진 바위를 바라보는 시시포스의 심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전보다 더 강도 높은 혁신을 밀어붙이고 싶었지만 은인자중 땅속의 매미 유충처럼 견뎌냈다. 식당 활성화보다 가정의 평화가 더 중요했다.

몇 년 뒤, 참는 자에게 복음이 들려왔다. 식당이 재개발 구역에 편입 됐다는 소식이었다.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 밖에서 간판도 안 보이는 불리한 입지와 비효율적 공간 구조 등 근본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다시 분주해졌다. 건물을 신축해 이전해야했고, 이전 기간의 영업 공백을 막기 위한 새 점포도 마련해야 했다.

안 좋은 상권에 대한 원한이 깊었던 터라 상권분석 공부부터 파고 들었다. 착공 6개월 전부터는 서울 청담동과 명동을 오가며 유명 식당의 입지와 내부구조, 동선, 파사드, 인테리어 등을 세심히 관찰하고 반영할 부분은 기록했다. 건물이 완공된 뒤에 다시 손보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제대로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상권을 고려해 시청 근처에 132m2(40평) 규모의 새 점포를 마련했다. 2020년 1월에 개점했는데 하필 코로나19가 시작됐다. 월 7000만 원으로 출발한 매출은 6000만원으로 줄었다. 배달 판매를 늘리고 시청과 경찰청 등 여러 관공서 공무원의 꾸준한 수요에 힘입어 5월부터 다시 매출이 상승했다. 상권 내 관공서 공무원들 입소문 전파력이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력보다 강력했다. 좋은 상권의 이점을 톡톡히 누린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안정화된 뒤에는 본점에서 15명이 월 8000만원의 매출을 올릴 때 시청점은 김 대표 주도로 10명이 월 1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두 곳의 성과 차이를 인지한 시아버지는 며느리인 김 대표의 능력을 평가하고 권한을 대폭 이양했다.

2022년 3월, 드디어 온천장 시대를 마감하고 부산 구서동에 신축한 본점이 문을 열었다. 대지 793m2(240평)에 건평 1984m2(600평)의 4층 건물이다. 이중 식당은 2층의 463m2(140평)을 사용한다. 홍보 마케팅은 거의 없었는데도 연일 고객이 120석의 자리를 채운다.

식당과 브랜드 인지도 역시 급상승 중이다. 월 매출액은 2억~2억5000만원 선. 김 대표가 10년 전부터 운영한 블로그도 일정 부분 기여했지만 더 큰 고객 유입 요인은 따로 있었다. 주변 지인들의 직간접 조력과 온천장 시절부터 일관되게 지켜온 음식 철학이다.

첫째, 식재료인 해물은 무조건 규격이 크고 좋은 것을 사용한다. 새우는 10미 규격, 오징어 대신 식감이 우수한 갑오징어를 사용하는식이다.


둘째, 밑반찬은 수제품이다. 반찬 가짓수는 적지만 한정식 수준을 유지한다.


셋째, 이러면 원가가 올라간다. 올라갔으면 가격에 반영한다. 제값 받고 제대로 만들어 내놓는다. 고객도 해물 음식 만큼은 저렴한 가격이 아닌 음식 가치를 구매 기준으로 삼는다. 저가를 내세우기보다 음식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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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수익은 사람

김 대표에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한식 대중화이고 또 하나는 인재 양성이다. 한식 대중화를 위해 올해 안에 밀키트 제품의 제조와 유통사업 준비를 마칠 예정이다. 해물찜보다 대중성이 높은 아이템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시제품이 나오고 사업이 본격 궤도에 오르면 식당 건물의 빈 공간에 제조 설비를 들여놓을 계획이다.

먼저 온라인 판매를 실시하고 차후에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발전시키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재 1층에는 커피숍, 4층에는 스크린골프장도 운영 중이다. 이런 기존 사업들과 새로 출범하는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연 1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중 5~6억원은 온라인 판매로 달성할 것을 1차 목표로 잡고 있다.

김 대표는 외식업을 산업 차원으로 격상시키려면 인적 자산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마파람>도 결정적 순간마다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다. 새로 시작한 구서동 본점의 빠른 영업 정상화도 지인들의 직간접 조력과 성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외식업계 인사뿐 아니라 업계 밖 인사들과의 교류를 중시한다.

남편인 권 대표가 가입한 로타리클럽과 청년회의소 회원, 심리학자, 공학자, 행사 기획 전문가 등 교류 폭이 넓다. 이들과의 사귐이 닫힌 사고의 경계를 무한 확장해준다. 또 생각과 관점이 전혀 다른 이들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외부를 통해 내부를 보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보다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에게 더 얻기 쉽다. 외골수가 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타 업종 종사자에게 귀를 열어놓으려 한다. 해물찜 전문점을 운영하면서 고기 전문가들과 자주 모임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김 대표는 전문가 그룹 인재들과의 교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사람을 키워내고자 한다. 교육 컨설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과 운영진을 구성하고 2023년 3월에 외식 경영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기관 ‘인사이트 비전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지난 4월 ‘다점포왕’이자 <낙원갈비집> 대표인 김규열 강사의 강의로 첫 수업을 시작했다. 연회비 200만원을 내면 1년간 월 2회의 강의를 수강할 수 있다. 회원이 꾸준히 늘어 현재 40여 명이 가입했는데 교육의 질 유지 차원에서 50명을 넘기지 않을 방침이다.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강의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교육 프로그램 운영도 구상 중이다. 인사이트를 키워주고 비전을 찾을 수 있다면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도 교육을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회비만으로는 비용을 충당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아직은 운영에 어려움이 없다. 교육장과 식비 등을 무료나 염가로 협찬해 주는 지인들 덕분이다. 한 사람 뒤에는 열 사람이 있고 ‘찐팬’ 100명만 있으면 무슨 사업이든 성공할 수 있다는 김 대표의 말을 스스로 입증 해준다. 결국 사업도 사람이다. 귀인의 도움이 절실했던 매 순간 귀인은 나타났다. 평소 김영진 대표가 남의 귀인이 돼주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교육 사업은 내 안의 내가 시킨 일이다. 배움에 목말라 전국을 헤집고 다녔던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내린 명령이고 약속이었다. 지금이 그 약속을 지킬 때다.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외식인이 서울까지 오가지 않아도 수준급 강의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외식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유능한 귀인이 돼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 매우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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