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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
음식 인문학 전문가

비빔밥 이야기 1편 : 비빔밥을 아시나요?

2023.02.21


 비빔밥 이야기 1편 

: 비빔밥을 아시나요?




백남준 예술은 비빔밥 예술

비빔밥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소개한 사람은 백남준(1932~2006년)이다. 📺️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은 비디오 아티스트와 비빔밥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비빔밥의 겉과 속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30년 전인 1994년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전시회의 인터뷰에서 이미 자신의 예술을 ‘비빔밥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그 후로도 백남준은 여러 차례 자신의 예술을 비빔밥에 빗대서 설명하고, 급기야 유럽에서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연구하고 강의한 이들도 “백남준의 예술은 비빔밥 예술”이라고 소개했다. 🎨

 

특히 1994년 뉴욕에서 열린 “백남준, 강익중 전시회”를 주관한 강익중 씨는 당시의 인터뷰에서


“백남준 선생은 다양한 재료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비빔밥을 자주 언급했는데, 이번 전시는 선생의 작품과 내 작품이 계속되는 대화를 통해 한국의 자연과 정신을 만나게 하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30년 전에 백남준 혹은 그와 교류가 있었던 이들은 “백남준 예술은 비빔밥 예술”이라고 여겼다.

 

"하나의 그릇 안에 동양과 서양, 한국, 일본이 뒤섞여 있다. 서로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각각의 요소와는 또 다른, 제3의 맛을 드러낸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에는 비빔밥처럼 '섞임'에 유연한 한국 사람들이 세계의 선두에 설 것이다."





백남준, 비빔밥을 설명하다!

여러 가지 이질적인 문화를 하나의 그릇에 담는다.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하나의 그릇 안에서 섞이고 충돌하며, 마침내 서로 융합한다.

비빔밥이 그러하듯이 여러 요소가 뒤섞이면서 처음 그릇 안에 담은 요소들과는 전혀 다른 제3의 맛을 만들어낸다.

 

비빔밥? 그건 별다른 음식도 아니고, 별로 어려운 음식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겠다.

그렇지 않다. 비빔밥은 한식의 특질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단한 의미를 지닌 음식이다. ⭐️

우리는 비빔밥을 흔하디흔한, 그저 그런 음식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왜 미국 뉴욕 등 외국에서 한식을 홍보할 때는 늘 비빔밥을 대표로 내세울까?

오방색(五方色)이 의미가 있고 아름답다, 비빔밥 위에 올리는 고명들이 아름답다, 혹은 건강식이라는 대답이 나오겠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비빔밥은 별다른 기술, 재료도 필요 없지만,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음식, 한반도에서 오래전부터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났고, 전 민족이 알게 모르게 진화, 발전시킨 우리만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비빔밥 기원에 대한 설

비빔밥의 기원에 대해서 여러 종류의 '설'이 있다.

병영에서 시작된 것, 농부들의 들밥에서 시작된 것, 제사 음식에서 시작된 것, 궁중의 연말 마지막 날 남은 음식들을 섞어서 비빔한 것 등등이 있다. 🌾

모두 틀렸다. 비빔밥은 특정 시기 특정한 곳에서 시작된 음식이 아니다. 언제인지 알 수 없으니 오래 전에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난 음식이다.

기존의 주장들도 모두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추론할 뿐이지 "언제?"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비빔밥 기원'에 대한 정확한 주장은 없는 셈이다. "정확히 알 수 없다.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음식이다"는 표현이 오히려 옳다.

 

 

혼돈반과 비빔밥 그리고 골동반

비빔밥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중기 문신 박동량(1569~1635년)의 "기재잡기(寄齋雜記一)" 중 "역조구문"에 나타나는 '혼돈반(混沌飯)'이다.


"자네 술은 얼마나 마시며, 밥은 얼마나 먹는가?" 하였다. 전임(田霖 ?~1509년)이 대답하기를, "오직 공께서 명하시는 대로 먹겠습니다." 하니,

🍚 곧 밥 한 대접에다가 생선과 채소를 섞어, 세상에서 말하는 비빔밥[混沌飯, 혼돈반]과 같이 만들고 술 세 병들이나 되는 한 잔을 대접하니, 전임이 두어 숟갈에 그 밥을 다 먹어 치우고 단숨에 그 술을 들이켰다.'


‘혼돈반’은 정확히 비빔밥이다. “기재잡기”는 임진왜란 후인 17세기 초, 중반의 기록이다. 🧾

혼돈반’이 나타나는 부분은 세조(1417~1468년) 무렵이다. 글에서 혼돈반(비빔밥)을 먹은 전임은 1509년에 죽었으니 혼돈밥을 먹은 것은 대략 15세기 중, 후반으로 봐야 마땅하다.

추론하자면, 그 이전부터 비빔밥은 이미 우리 곁에 있었고 민간에서는 자연스럽게 먹었던 음식이다. 다만 별도의 이름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섞으니 혼란스럽게 섞은 밥, 혼돈반 정도로 표기했을 것이다.


“밥 한 대접에 생선과 채소를 섞어서 만든 음식”이 “세상에서 말하는 ‘비빔밥=혼돈반’”이다.


비빔밥은 조선 시대 내내 ‘혼돈반’ 혹은 ‘골동반(骨董飯)’이란 이름으로 기록에 나타난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골동반이라는 이름을 더 빈번하게 사용하지만,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여전히 ‘혼돈반 방(渾沌飯 方)’이란 이름으로 나타난다. 혼돈반 방은, ‘비빔밥 만드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비빔밥이 여러 종류의 밥 중 주요한 하나의 레시피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한글 발음으로는 같지만 "기재잡기"와 "임원경제지"의 혼돈방 표기는 "混沌飯(혼돈반, "기재잡기")"과 "渾沌飯(혼돈반, "임원경제지")"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제사나 손님 맞이 등에 정식으로 사용하는 음식이 아니라 민간에서 널리 먹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정식 음식이면 이름을 한 가지로 정확하게 표기했을 것이다.

뜻은 둘 모두 혼란스럽게 섞은 밥이라는 뜻이다.





일본인들은 비빔밥을 모른다

“임원경제지”의 혼돈방은 “기재잡기”의 비빔밥(혼돈반)만큼 정확한 혼돈반(비빔밥) 형태가 아니다. 

“임원경제지”에 나오는 혼돈반을 복원하면 비빔밥이 아니라 영양 솥밥 닮은 음식이 된다. 돌솥에 쌀과 더불어 대추, 밤, 팥 등을 안쳐서 지은 영양밥이다. 중국의 골동반, 일본의 가마솥밥(가마메시) 등과 닮았다. 

 

비빔밥은 섞고 비비는 음식이다. 가마메시나 중국 골동반은 다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빔밥의 정해진 레시피는 없다. 


🥗 들판에서 새참으로 비빔밥을 먹을 때, 10종류의 나물 반찬과 된장찌개와 고추장을 앞에 놓는다. 

각자의 큰 그릇에 밥을 담는다. 밥을 퍼담는 양부터 된장찌개, 고추장의 양, 10종류의 나물 양부터, 더하는 나물, 빼는 나물의 종류와 양까지 생각하면, 100명이 섞고 비비면 100개의 레시피가 나온다. 

한솥의 밥과 같은 고명으로 백 명의 사람, 100개의 다른 레시피가 나온다. 어떤 비빔밥이든 모두 소비자(먹는 이)가 고명, 밥, 장의 양과 순서를 조정하고, 비비는 강도도 조정한다. 

내용과 형식의 상당 부분은 주방이 아니라 먹는 이(소비자)가 정한다. 바로 비빔밥이다. 

 

밥의 양, 넣고 빼는 고명의 내용물과 양, 사람마다 다른 양념의 내용과 양이 따로 있다. 비비는 방식에 따라 다르고 밥, 나물 등 고명, 장의 내용과 용량에 따라, 그 비율에 따라 각각 다르다.

비빔밥은 백남준이 이야기한 대로, 여러 곡물, 고기, 생선 등을 하나의 그릇 안에 넣고 젓갈이나 각종 장물을 넣어 비벼서 먹는 음식이다.

어떤 재료를 넣고 비벼도 비빔밥이 된다. 비빔밥에는 정해진 내용이나 형식, 레시피가 없다.

 

일본인에게는 비빔밥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음식이다. 일본인들은 섞고 비벼 먹는 것을 "음식을 망가뜨린다"고 생각한다. 🤷‍♂

'가마메시[釜飯, 부반]'는 일식 중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이며, 한편으로는 비빔밥과 겉모습이 상당 부분 닮았다.


가마메시는 '가마 솥밥'으로, 무쇠솥에 쌀을 안치고 그 위에 버섯, 해물 등을 올려서 밥을 짓는다. 끓는 물을 부은 뒤 작은 양의 나물 등을 모양새로 올린다.

굴을 올리기도 하고 적절한 해산물, 버섯, 죽순 등 채소류도 사용한다. 가을이면 고명으로 송이버섯 등을 얹어서 밥을 짓는다. 겉모습은 비빔밥과 상당 부분 닮았지만, 가마메시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가마메시비벼서 먹으면 안된다. 가마메시를 섞어 먹으면 상대방에게 실례가 된다. 😅

일본인들은 음식을 섞어 먹는 경우가 없으며, 간장을 조금씩 찌개처럼 떠서 한 입에 먹을 만큼 먹는다. 또한,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형태를 유지한 채로 끝까지 먹어야 한다


그러므로, 비빔밥과 가마메시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 다음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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