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설렁탕 이야기 1편
: 곰탕과 설렁탕은 어떻게 다른가요?
🙋🏻♀️ “곰탕과 설렁탕은 어떻게 다른가요?”
소비자 뿐만 아니라 설렁탕집 주인, 주방 식구들에게도 받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나름 간단하고 쉽게 대답하면
💡 “곰탕은 고기 곤 국물이고, 설렁탕은 뼈 곤 국물이다.”
💡 “곰탕은 노란 기름기가 도는 맑은 국물이고, 설렁탕은 회백색, 흰색의 탁한 국물이다.”
즉 곰탕은 맑고, 설렁탕은 희다.
하지만, 가끔 반론도 나온다.
서울 마포의 어느 설렁탕집은 가게 이름에 이미 고기 이름이 들어 있는데, 그건 곰탕인가요, 설렁탕인가요?
이에 대해 “변형 설렁탕”이라고 대답한다. 이 가게는 60대 주인이 30대 무렵에 숙부로부터 물려받은 가게로, 그동안 두어 번 가게를 이전했고 음식도 조금씩 바뀌었다.
하지만 이름이 설렁탕이고 뼈 국물이 뼈대를 이루니 결국 설렁탕이다. 그저 곰탕의 장점을 조금 더한 것 뿐이다.
곰탕과 설렁탕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음식이다. 📜
고기 곤 국물과 뼈 곤 국물의 차이, 투명한 국물과 탁한 국물로 차이 정도가 아니다.
말하자면, 곰탕과 설렁탕은 시작과 출신 성분(?), 뼈대, 그리고 발전, 진화하는 모습까지도 전혀 다른 음식이다.
곰탕, 음식의 바탕이고 시작이다
곰탕은 전통이 깊은 음식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우리 고유의 음식은 아니다.
지금도 제사 음식에서는 곰국 또는 탕이 빠지지 않는다. 제사상 가운데에는 쇠고기, 무, 가늘게 썬 다시마 등이 들어간 탕이 제공되는데, 이것이 곰탕 또는 곰국이다.
곰탕은 대갱(大羹)이라고도 불리며, '갱'은 국물을 의미한다. 대갱은 큰 국물, 즉 으뜸 국물이라고 할 수 있다. |
모든 국물의 시작이 되는 음식으로, 곰탕은 제사 음식에서 비롯되었으며 중국 한나라 이전부터 이미 대갱이 널리 사용되어왔다.
도축한 고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희생(犧牲)이라고 한다. 🥩
희생은 제사에 사용하는 정육(精肉)으로, 도축한 후 뼈, 기름, 내장, 껍질, 피, 대가리 등을 걷어낸 살코기를 말한다. 오늘날 "정육점"은 바로 귀한 살코기를 파는 가게라는 뜻이다.
곰탕은 이 정육을 사용하여 만든 국물이다. 제사상에서는 고기를 삶아 제공하지만, 국물도 버리지 않고 올린다.
고기를 삶는 이유는 막 도축한 살코기는 보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삶은 고기의 뛰어난 보관성이 곰탕이 등장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대갱과 곰탕은 이 고기국물이 시작이다.
제사 음식은 일상의 음식 중 가장 귀한 음식이다. 그중에서도 곰탕과 대갱은 제사 음식 중에서 가장 귀하다. 🙇🏻
한반도에서는 유교식 제사, 예법을 받아들이면서 중국식 제사인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를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유교적 가치관과 제사법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대갱과 곰탕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오랜 전통의 제사법을 버렸다. 제사가 사라지면서 제사상의 곰탕도 사라졌다.
따라서 지금은 곰탕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음식이다.
최고의 맛, 곰탕
최고의 칭찬, 대갱
과거에는 간장과 된장과 같은 조미료가 흔치 않아 음식을 감미롭게 하기 위해 소금과 매실을 사용했다. 소금과 매실은 음식의 감칠맛을 높이는 필수품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
왕이나 황제는 믿음직한 신하에게 "그대가 나의 '염매(鹽梅)'가 되어주오"라는 말을 했으며, 염매는 고귀하고 필수적인 존재로서 항상 곁에 두어야 했다.
제대로 된 곰탕이나 대갱은 매실과 소금을 사용하지 않고도 맛을 내는데 충분하다.
곰탕은 고기를 곤 국물, 그 자체다. 그 자체로 이미 맛의 궁극에 다다랐으니 가징 기본적인 소금과 매실도 필요치 않다.
“대갱은 원래 매실과 소금으로도 조미하지 않고, 지극히 묘한 이치는 뾰족한 붓과 혀로도 그리기 어렵네(大羹元不和梅鹽, 至道難形筆舌尖)” <조선 초기 문신 모재 김안국(1478~1543년)의 시> |
송당 조준은 대갱과 견줄 만한 글이나 공덕을 지닌 ‘공(公)’으로, 이 글이 실린 문집의 주인공이다.
정도전과 더불어 조선을 설계하고 구축한 공신으로, 토지, 경제정책 등은 송당 조준이 기획한 부분이 크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읊조리고 글을 읽어 보면, 대갱(大羹)은 꼭 소금이나 매실로 조미하지 않아도 역아(易牙)의 조미를 알 수 있고, (중략) 어찌 꼭 당대에 공의 빛나는 공덕을 직접 접한 뒤에야 공이 남긴 문집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겠는가.” <송당 조준(1346~1405년) '송당집'의 서문> |
이 글은 송당 조준의 “송당집”의 서문으로, 후손들이 문집을 출간하거나 다시 출간할 때 덧붙인 글이다. 조상의 문집을 수정하거나 덧붙여 출간하면서 서문 등에 후손이 최고의 찬사를 더했다. ✏️
그 찬사가 바로 “조상 송당의 글솜씨는 대갱 수준이다. 당연히 염매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최고의 조리사라 불릴만한) 역아의 맛을 느낄 수 있고”이다.
최고의 맛은 대갱, 곰탕이다. 곰탕은 귀하고, 맛의 근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