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 삼겹살이 오랫동안 사랑 받는 이유
냉동 삼겹살(이하 냉삼)의 인기가 제법 오래 갑니다. 이쯤 되면 완벽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을 한 것 같네요.
사실 저는 냉동 삼겹살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냉동 삼겹살이 장사하기에 아주 괜찮은 아이템이고 머지않아 뜰 것이라고 사장님들께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국내 외식 시장에서 유행하는 아이템은 늘 있었고 또 그만큼 빠르게 식는 케이스도 많이 봤지만 역시나 냉삼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냉동 삼겹살 경쟁력에 집중!
은박지를 깐 묵직한 불판에 얇게 썬 돼지고기를 바싹 익혀 먹던 추억의 맛을 기억하는가. 🥓
이 정겨운 한 상 차림을 기억하는 이들은 대부분 1990년대 ‘정육점식당’을 즐겨 찾던 시절이 뇌리에 남아있어서일 것이다.
과자처럼 바짝 익혀서 먹었던 그때 그 정육점식당 돼지고기의 추억을 소환하는 게 바로 요즘의 냉삼이다.
2016년 무렵부터 30년 전 즐겨 먹었던 ‘정육식당 표’ 냉동 삼겹살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
이쯤 되면 냉삼이 단순히 돌고 도는 복고풍의 유행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외식 시장에서 냉동 삼겹살, 어떠한 관점으로 봐야 할까 🔍
# 40~50대 중년층의 소울푸드
1990년대 초중반 서울 마장동을 중심으로 한창 생겨났던 게 정육식당이다.
당시 정육식당을 찾았던 이들의 단골 메뉴는 냉동 삼겹살.
그러니까 30대부터 40~50대 중년층, 노년층은 당시 정육식당에서 먹었던 냉동 삼겹살을 기억하고 있다.
부산에서 <송정집>을 운영 중인 장석관 대표는 냉삼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추억’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
그 역시 젊은 시절 자주 다녔던 오래된 냉삼집들에 대한 추억이 있다.
👤 <송정집> 장 대표는 “부산에도 7-8년 전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한 냉삼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에 동창들과 여러 번 가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은박지 위에 얇은 삼겹살을 구워 고춧가루, 설탕, 참기름으로 간 한 파 채에 싸 먹는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
최근 오픈한 냉삼집들을 방문해 보면 백발의 신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냉삼겹에 반주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신규 외식 업소에서 노년층 고객을 유입할 수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인 요소다. 👴🏻
# 밥밥찬 스타일의 찬류 구성 → 백반+술안주 완성
미식가와 식도락가들이 즐겨 찾는 냉삼집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
고깃집치고 반찬 수가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최근 숙성 삼겹살을 판매하는 곳들 대부분이 원육에 집중, 찬으로 김치나 장아찌류로 단출하게 낸다면 냉삼집들은 기본 찬만 6~7가지가 훌쩍 넘는다.
집집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주로 마늘과 재래식 된장, 무생채, 콩나물, 멸치조림, 김치, 젓갈, 맛소금으로 짭짤하게 무친 나물 찬 등 가정식 찬 구성이다.
대구에서 20여 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냉삼집의 절대강자 <삼거리식당>은 17가지 가정식 찬을 제공한다.
어묵볶음, 쪽파김치. 봄동 무침, 꽈리고추 무침, 참나물무침, 감자볶음, 소시지, 샐러드, 양념게장까지 한 상 푸짐하게 낸다. 4인 상이 가득 찬다.
주당들이 방문할 때마다 “삼겹살 익기 전 반찬만으로도 소주 한 병 너끈히 비우겠다”며 너스레를 떨 정도다. 🍶
그리고 대부분의 냉삼집들이 삼겹살은 테이블 한쪽 끝에 불판을 두고 굽는다.
마치 삼겹살이 메인이라기보다 밥반찬 중 한 가지인 것 같은 차림새다. 술안주로도 탁월하지만, 식사하면서 한두 점씩 찬으로 집어 먹기 좋은 형태다.
남도 밥상 못지않은 푸짐한 백반 한 상에 고소한 냉삼겹까지 곁들여 가성비 높은 한 끼 식사가 완성되는 것이다. 🍱
💡 TIP 시그니처 찌개 제대로 구성해라!
▲ <나리의 집> 청국장 서울·경기 지역의 대표적인 냉삼겹집들을 살펴보면 가정식 찬을 구성한다는 것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 바로 시그니처 찌개 메뉴다. <나리의 집> 청국장, <전주집> 부대찌개, <부림식당> 청국장(무와 감자만 넣고 끓이는데 상당히 독특하다), <명동집> 김치찌개, <행진> 고추장찌개, <행님회관> 갱식이국 등. 이 시그니처 메뉴 역시 안주보단 식사용 찬 개념에 가깝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큰 대접에 따뜻한 밥과 함께 건더기와 국물을 푸짐하게 담아 쓱쓱 비벼 먹는다. 그러니까 냉삼겹살집은 단순히 술을 위한 곳이 아니라 식사하면서 술도 한 잔 곁들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콘셉트다. 💡 냉삼겹에 곁들여 먹었을 때 잘 어울리면서도 임팩트 있는 찌개 메뉴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냉동 삼겹살집 오픈을 준비 중이라면 이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
# 원육 품질의 업그레이드
사실 냉동 삼겹살 하면 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저가형 고깃집들이었다.
1인분에 1,900원, 2,900원 하는 <대박집> 같은 곳들이다. 신선육, 고급육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급랭한 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는 메리트는 확실히 있었다.
그 당시와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라면 바로 원육의 품질이다.
1990년대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도축, 생산 시설이나 시스템이 뒤떨어져 원육 품질이 하향평준화 돼 있었다. 👎
더구나 공급받는데 길게는 10여 일이 걸리는 냉동 수입산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랜 시간 동결돼있는 동안 수분과 육즙이 빠지면서 고기가 퍼석퍼석한 데다 일부는 도축할 때 말끔히 제거하지 않은 핏물이 굽는 즉시 빠지면서 누린내가 배는 경우도 많았다. 바싹 익히지 않으면 기생충에 노출된다고 해서 거의 과자처럼 딱딱하게 구워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도축·생산 시스템이 완전히 개선되면서 신선하고 질 좋은 원육 공급이 가능해졌다. 👍
고급 원육이 받쳐주니 다양한 콘셉트의 돼지고깃집을 구현할 수 있게 됐고, 그중 하나가 어릴 적 은박지 불판에 구워 먹던 추억의 냉동 삼겹살이다.
1990년의 추억은 살리면서 전혀 다른 품질의 원육으로 품질 만족도까지 높인 셈이다.
👤 20여 년간 축산유통업을 해온 김배경 대표는 “1990년대 당시에는 4~5번 출산한 모돈이나 품질 떨어지는 원육 상태를 가리기 위해 냉동이 불가피했다면 최근에는 재료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급랭하는 경우가 많다”며 “냉동육을 질 낮은 고기라고 폄하할 시기는 진작 지났다”고 설명했다. |
👤 축산물품질평가원 서위석 유통정보처장은 “수분 함량 정도가 육류의 저장성이나 맛, 색 등에 크게 관여하는데 소고기, 닭고기에 비해 수분 함량이 높은 돼지고기의 경우 보관 상태에 따라 더욱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원육 품질만 보장된다면 냉동 상태로 판매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
# 노포(老鋪)의 매력
냉동 삼겹살집의 또 다른 매력은 오래된 식당이 주는 정취와 분위기다.
앞서 소개했던 <나리의 집>, <전주집>, <부림식당>, <문경식당> 등은 전부 20년 이상 된 노포들이다.
이중 나리의 집은 핫한 이태원 상권에서 수십 년 자리를 지키며 현재는 ‘랜드마크화’돼 있다. 🎡
전통 있는 삼겹살집은 손에 꼽기 어려워도 이처럼 수십 년 된 대표적인 냉삼집들은 눈에 띈다.
‘노포'*의 매력과도 상통한다.
같은 돼지고기 아이템이라도 일반 삼겹살집과 냉삼집은 왠지 구분해서 봐야 할 것처럼 냉삼집은 냉삼집만의 운치가 있다. 😉
한창 냉동 삼겹살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무렵 오픈해 7~8년 넘도록 주목 받는 <잠수교집>이나 <행진>, <한도삼겹살>, <천이오겹살> 등은 전부 노포 감성을 살려 디자인했다.
일부 냉삼집들은 바닥에 도기다시*로 처리하기도 하고 대부분 실제 1980~1990년대 사용하던 물품들을 그대로 가져다 놓으며 복고풍 인테리어를 제대로 구현했다.
‘냉삼집=노포의 매력’이라는 무언의 공식이 생긴 셈이다.
빠르게 변하고 갈수록 가벼워지는 디지털 시대에 오래되고 낡은 것이 주는 매력은 특별하고 귀할 수밖에 없다. 💖
*노포(老鋪):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오래된 점포
**도기다시: 돌 표면을 갈고 닦아 만드는 바닥 공사 방법
외식경영 전문가 황해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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