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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업
황광해
음식 인문학 전문가

비빔밥 이야기 3편 : 섞음, 비빔 그리고 자유로움

2023.03.08


 비빔밥 이야기 3편 

: 섞음, 비빔 그리고 자유로움


🔗비빔밥 이야기 2편에서는 비빔밥과 골동반의 차이, 다양한 종류의 비빔밥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빔밥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등잔 밑이 어둡다. 등잔 아래 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도 어둡다. 

이 이야기는 비빔밥에 대한 것이다.

한국인들도 비빔밥을 잘 모르며, 외국인들 역시 비빔밥을 모르고 있다. 😔


그럼에도 비빔밥은 한국을 대표하는 한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비빔밥이 정확히 어떤 음식인지 모르고 '비빔밥 팔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오방색'으로 장식한 예쁜 음식이며, '나물이 많아서 채식주의자들에게 좋은 건강식'이라고 설명한다.

이것만으로 비빔밥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왜 예쁘게 꾸며서 그릇에 담아낸 다음, 정작 먹기 전에 마구 뒤섞어서 엉망으로 만들까?' 라는 일본인들의 질문에


우리는 정확한 답변을 주지 못한다. 대부분, 민족 감정만을 바탕으로 대답한다.


'서양식 채식식단과 어떻게 다른지?' '비빔밥이 사찰 음식에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등의 질문에 대한 답도 없다. 🤷‍♂️

그저 '우리 비빔밥은 예쁘고 아름답고, 건강식이다!' 라는 수사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나물이 많은 우리 한식은 원래 건강식이 아니었을까? 비빔밥이 사찰 음식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면 젓갈, 고기, 생선 등이 들어간 다양한 종류의 비빔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990년대 초, 중반 백남준이 여러 차례 비빔밥, 비빔밥 예술, 비빔밥 정신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흘리고 지나쳤다. 비빔밥에 대한 좀 더 풍부하고 정교한 이야기는 더는 나오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의 비빔밥

1999년 6월, 팝스타 마이클 잭슨(Michael Joseph Jackson, 1958~2009년)이 한국을 방문했다. ✈️

그 당시 보도에 따르면 마이클 잭슨은 호텔에서 여러 차례 비빔밥을 먹었다. 호텔 측은 마이클 잭슨이 먹은 비빔밥을 '마이클 잭슨 비빔밥'이라고 이름을 붙여 메뉴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메뉴는 사라졌다.

기사 내용은 단순히 "세계적인 팝스타가 한국 비빔밥을 먹고 좋아한다니 신기하다"라는 정도였다.

그 때는 국내 항공사에서 비빔밥을 비즈니스석 기내식으로 제공했는데, 가격 문제로 비즈니스석에만 제공되었다. 이 메뉴는 그해 최고의 항공사 기내식으로 선정되어 '전설'처럼 떠돌았다.

 

"몸에 좋은 채식 식단이라서 마이클 잭슨이 좋아했을 것"이라는 사족이 붙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

마이클 잭슨 정도의 톱스타가 서양, 미국의 고급 채식 식사를 보지 못했을까?

마이클 잭슨이 묵었던 호텔에 부탁해도 충분히 세계적 수준의 채식 식단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비빔밥이었을까?

우리는 비빔밥을 외국인도 좋아하는 "건강한 채식 식단" 정도로 여겼다. 채식 식단과 비빔밥은 뭐가 닮았고, 뭐가 다를까? 왜 하필이면 마이클 잭슨이 채식 식단이 아니라 한국의 비빔밥을 좋아했을까?

누구도 이런 "합리적인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비빔밥을 잊었다.



비빔밥은 일상 그자체

마이클 잭슨이 먹었던 비빔밥은 울릉도의 삼나물과 고비를 넣은 것이었다.

비빔밥은, 한국인에게는, 별다른 음식이 아니다. 주변에서 늘 흔하게 볼 수 있다. 백반집에서 몇 가지 나물을 넣고, 된장, 간장, 고추장을 넣고 비비면 비빔밥이다.

잘 삭은 열무김치와 된장찌개를 넣고 비벼도 비빔밥이다. 재료와 레시피를 정하면 오히려 비빔밥의 의미를 줄이고 한정하는 것이다.

 

비빔밥에는 고기를 넣어도 되고, 빼도 된다.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혹은 다른 고기 등 고기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생선도 마찬가지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날생선, 익힌 생선, 젓갈, 생선의 알 등을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나물도 마찬가지다. 생채(生菜), 숙채(熟菜), 초채(醋菜)를 가리지 않는다. 말린 나물도 좋고, 생나물도 좋다. 산나물, 들나물을 가리지 않는다. 삭힌 것과 식초 절임한 것도 가리지 않는다.

장()도 마찬가지다.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이 모두 가능하다.

비빔밥은 레시피가 따로 없는 음식이다. 레시피를 정해서 설명하는 순간 '한국 비빔밥'은 고유의 매력을 잃어버린다.


모든 음식을 만들 때, 철저하게 레시피를 따지는 외국인에게는 간단치 않다. 📖

여러 가지 반찬을 원하는 대로 넣고 비벼 먹는 음식, 뭔가 어색하다. 비빔밥을 처음 만나는 외국인은 '먹는 방법'과 더불어 '만드는 방법'을 묻는다.

"누구나 각자의 방법으로, 밥, 고명, 장()을 넣고 비벼 먹으면 된다"라고 설명하면 대부분 외국인은 비빔밥 앞에서 당황한다.

우리는 자유롭고 편한 음식, 간단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여기지만, 비빔밥은 우리만 먹는 고유, 특유의 음식이다.




비빔밥과 짜파구리는 닮았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 감독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받았다. 영화와 더불어 영화에 나온 '짜파구리'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짜파구리'는 '한국식 비빔면'이다. 짜파구리는 '짜장면+파스타+너구리'의 혼합이다. 짜장면과 닮은 구석은 없지만 '짜파게티'의 계보를 이었으니 짜파구리다.

중국(짜장면), 이탈리아(파스타), 일본(너구리 우동, 라면) 음식을 '한국적으로' 섞어서 비빔밥처럼 먹는다.

왜 섞었는지, 누가 처음 시작한 음식인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없다. 몇 나라의 음식을 섞고, 여기에 쇠고기 안심을 얹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외국의 반응이다. 번역 당시부터 짜파구리를 대신할 단어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외국에서는 보기 힘든 음식이기 때문이다. '람동=ramen+udon'으로 번역했다가 영화가 유명해지면서 '짜파구리'로 돌아갔다.

 

한식의 ‘섞음’과 ‘비빔’은 이렇게 나타난다. 자유로움이다. 정해진 형식과 모양이 없다. 🧙‍♂





비빔밥, 퓨전, 융합의 음식이다

백남준의 ‘비빔밥 예술’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소리와 모습, 역사적 사실과 일상의 일들이 하나의 화면에서 뒤섞인다. 🌪️

어느 것을 얼마만큼 섞는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이질적인 여러 요소는 하나의 그릇 안에서 충돌하고 화합한다.


충돌과 화합은 ‘너와 나’의 화학적 반응을 불러온다. 여러 요소가 뒤섞여 충돌하고 화합한다.

새로운, 제3의 요소가 탄생한다. 하나의 그릇 안에서 뒤엉켜 부딪힌다.

나물에 장()의 맛이 배고, 밥 알갱이에 나물의 즙과 장의 맛이 뒤엉킨다.

융합이 일어난다. 융합의 영어 표현은 ‘convergence’ 혹은 ‘fusion’이다.


비빔밥을 ‘나물이 많은 채식, 건강식’이라고 설명하지 말자. 비빔밥은 그것보다는 훨씬 넓고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을 제외한 외국에는 없고, 우리는 단지 제대로 된 의미를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백남준의 설명대로 하나의 그릇 안에 곡물과 나물, 장을 뒤섞었다.

비빔밥은 한국 고유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음식이다. 😉

가끔 외식업체 대표나 주방 식구들에게 강의를 한다. 언젠가 "떡볶이는 떡의 비빔"이라고 했더니 강의를 듣던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 세계에 떡을 먹는 나라는 많다. 떡볶이의 재료인 달걀, 어묵, 장류(고추장), 무, 대파 등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나라에서 먹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뒤섞고, 다시 조리해서 '떡볶이'로 내놓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떡볶이도 뒤섞고, 비비는 음식이다.

떡볶이는 '떡의 볶음', '비빔 떡', '비빔 볶음 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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